선인풍류 2010. 6. 29. 17:28






 

국적과 이념&사상을 초월한 정의로운 시각


 

   

 

도쿄에서 본 한국-우루과이전


NHK 실황해설진은 후반부터 한국을 응원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청용의 헤딩슛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을 때 NHK는 이렇게 말했다.


"아! 이청용의 헤딩 슛이 드디어 우루과이의 골문을 갈랐습니다. 한국 정말 대단한 경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원점으로 되돌아갔어요. 아시아 축구를 리드하고 있는 한국. 오늘 한국이 보여주고 있는 엄청난 경기력과 멘털리티는 한국이 왜 아시아를 리드하고 있는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정말 훌륭합니다."

그리고 인저리 타임. NHK 실황해설진은 마치 자국팀을 응원하는 듯한 초조한 심정으로 말한다.

"아! 3분인가요. 아직 시간이 있어요. 절대 포기하면 안됩니다. 더 올라가야 해요. 조금 더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아! 저기서 끊기네요. 하지만 아직 괜찮습니다. 아직 시간 있어요."

기자 옆에 앉아 있던 일본인 여성 서포터들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은 전철막차를 포기하면서까지 한국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종료휘슬이 울려퍼지자 울었다.

"너무 억울하다. 정말 잘 싸웠는데"

J리그 클럽팀 우라와 레즈의 서포터이기도 한 미우라 미키(23) 씨는 한국팀을 왜 응원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울먹거리며 말한다.

"한국 응원하는 이유요? 당연하지요. 한국은 정말 매력적인 축구를 하니까요. 한국 공격진이 공을 잡으면 막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요. 언제나 한 건 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이길 수 있었던 경긴데 너무 골운이 안 따라서… 너무 억울해요."

이런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다. 기자는 한국의 모든 경기를 신주쿠 코리아타운에서 봤는데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일부러 코리아타운까지 왔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한 두번 놀란 게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축구팬들인 그들은 "일본과 함께 한국이 아시아 축구의 힘을 보여줬으면 한다"는 류의 립서비스를 안 한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한국축구가 매력적이니까."

한 두명도 아니고 이번 월드컵 시즌 중 만난 다른 외국인 축구팬들이 공통적으로 이런 얘기를 했다면 한국축구는 매력적인 축구를 한단 말일테다. 물론 기자 역시 축구팬이다. 지금 워낙 문제가 많아 대놓고 서포터라 말하기 부끄러운 상황이지만, 아무튼 도쿄베르디 경기는 시간이 나면 보러 간다. 기자 역시 한국는 매우 매력적인 축구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한국축구가 매력적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빠르고 젊고 투지가 넘친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매우 마음에 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스릴만점의 축구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을 맛보게 한다. 자국 팬들은 고통스럽겠지만(웃음)."

"헌신적인 수비와 최선을 다하는 공격. 피지컬의 약점을 팀의 단결력으로 커버하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팀을 위해 개인이 온 힘을 다해 뛰는 그 모습에 축구팬이라면 당연히 빠져들 것이다."

이들은, 그렇기 때문에 우루과이 전이 끝나고 아쉬운 탄성을 내 질렀다. 기자 역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질 못했다.

가정법은 의미없지만 이 날 만큼은 박주영의 그 프리킥이 조금만 덜 휘어졌다면, 정성룡이 조금만 빨리 상황판단을 했더라면, 이청용과 이동국의 그 땅볼슛이 들어갔더라면, 기적을 부르는 안정환이 투입됐더라면, 아니 비는 도대체 왜 왔는지 등등을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만큼 아쉬운 패배였다.

한국의 월드컵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어느 나라도 한국을 우습게 보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젊은 선수들이 많아 이번에 16강을 경험한 이들이 4년후에도 대거 등장할 것이다. 박지성, 이영표가 없더라도 4년간 착실히 경험을 쌓는다면 그들을 대신할 선수들이 분명히 나온다.

한국의 월드컵은 끝났지만 축구는 계속된다. 지금은 K리그 1부팀 뿐만 아니라 지역에도 수많은 클럽들이 존재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나라의 축구 수준은 그 나라 리그 수준과 정비례한다. 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가 언제나 우승후보로 다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어떤 스포츠든지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눈 앞에서 상대팀에게 승리를 거뒀을 때 소름돋는 일체감을 맛볼 수 있다.

매력적인 내셔널팀은 매력적인 리그에서 나온다. 매력적인 리그를 만들기 위해선, 그래서 4년후 다시 한번 세계를 놀래키려면 K리그 경기를 많이 보러 가야 한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는 법이다.

이 매력적인 팀이 4년후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다시 한번 정말 잘 싸워준 우리 선수들과 서포터들에게 경의를 표한다.